Ⓒ HOCELYN LEE STUDIO

사진은 영상, 글, 그림 등 다른 예술의 수단보다 훨씬 더 시도하기 쉬운 매체다. 모두에게 카메라가 하나씩은 있고, 이렇다 할 재주 없이도 그럴싸해 보이는 사진을 찍어낼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다른 어떤 예술보다 프로페셔널 포토그래퍼의 작업은 더욱 힘들 것만 같다. 누구나 가진 장비 하나로 그럴싸해 보이는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까. 내가 피사체로 삼는 대상을 다른 사람들 역시 찍어낼 수 있으니까. 나만의 개성을 사진을 통해 드러낸다는 것이 영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IXDesign이 소개할 사진가들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저마다의 개성 넘치는 찰나들을 포착해낸 이들이다. 이들의 멋진 작품과 함께, 독자 분들도 자신만의 찰나들을 아름답게 포착해보자.


  Ⓒ CHRISTIAN TAGLIAVINI STUDIO


  Ⓒ CHRISTIAN TAGLIAVINI STUDIO


  Ⓒ CHRISTIAN TAGLIAVINI STUDIO

“모든 표현 수단 중에서도, 사진은 아주 짧은 시간을 영원히 잡아두는 유일한 것이다. 사진 작가들은 끝없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다룬다. 그것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 돌릴 방법은 전혀 없다. 기억을 구체화해 인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작가들에겐 생각할 시간이 있다. 현실의 어떤 사건을 받아들이고, 거부했다가 다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여러 갈래로 나뉜 생각을 쉽게 정리할 방법도 있다.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무의식 속에는 그 기억이 남아 있어 언제든 다시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진가들에게는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 뿐이다.” 위대한 사진가 Henri Cartier-Bresson의 말이다. 맞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 뿐, 사진가가 기억 속 잔상을 끄집어내 다시 사진 위에 박제할 수는 없다. 찰나의 순간이 중요한 이유다. 그가 남겼던 또 하나의 명언은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바로 사진이라고 말이다. 여러분은 사진을 얼마나 많이, 또 자주 찍는가. 무얼 기록하기 위해 찍는가. 아니면 무얼 담아내려 애쓰고 있는가. 에디터가 가장 최근 찍은 사진은,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날 새까맣게 노려보고 있는 장면이었다. 남들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사진 한 장은, 생각보다 많은 기억을 우겨 넣은 채 이런 일도 있었다고 내게 말해주고 있다. 


  Ⓒ CHRISTIAN TAGLIAVINI STUDIO


  Ⓒ CHRISTIAN TAGLIAVINI STUDIO

또 다른 재밌는 점이 있다면 그와 함께하는 모델들이 전문 훈련을 받은 프로페셔널이 아니라, 일반인 지원자들 중에서 선택한 이들이라는 점이다. 프로페셔널의 이미지나 현대적인 용모가 그의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과거의 한 장면을 그저 재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별 의미가 없다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 장면을 가져오면서 끊임없이 현대적인 맥락과 작품이 부딪힌다는 점이다. 
이 순간, 그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로 변화하고 만다. 어쩌면 스위스와 이탈리아라는 두 나라가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와 현재를 잇듯, 스위스의 기술과 이탈리아의 역사가 그의 작품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이미지를 조립해 작품을 만드는 조립자가 아니다. 그는 창작자다. 

 

CHRSTIAN TAGHLIAVINI STUDIO



  Ⓒ CHRISTIAN TAGLIAVINI STUDIO

Christian Tagliavini는 스위스계 이탈리아 작가로 스위스에 뿌리를 두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그림을 그리듯 사진을 찍는다. 모델의 표정, 의상, 소품 등까지 섬세하게 연출한다. 독특한 점은 그 재료다. 일반적인 천, 금속뿐 아니라 종이(card board), 3D 프린터로 만들어냈다. 작가는 모델에게 종이로 만든 옷을 입힌다기보다는, 종이를 오려낸 일종의 가림막을 입게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옷은 마치 그림 같아서, 인물마저도 옛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에서 방금 막 걸어 나온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그는 작품에서 르네상스 작가들에게 바치는 오마주를 보여준다. 종이를 이용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의상은 보다 더 디테일한 부분까지 제작, 작품이 줄 수 있는 감동을 극대화했다. Tagliavini는 이를 위해 복식을 넘어 미술사조 또한 깊게 공부했다. <1503> 시리즈는 이탈리아 피렌체파 화가로 잘 알려진 Agnolo Bronzio에 대한 오마쥬를 담았다. 1503은 Agnolo Bronzio가 태어난 해인 1503년을 의미한다. 작가가 2017년에 발표한 <1406> 시리즈는 그보다 앞선 시절의 예술을 다룬다. 바로 르네상스 시대를 빛낸 화가 중 한 명이었던 Fra Fillippo Lippi에 관한 오마쥬다. 역시 시리즈명의 숫자는 Lippi가 태어난 1406년을 의미한다. 이 시리즈에서 작가는 르네상스 의상을 현실로 충분히 옮겨 놓는 것에 더해 모자, 헤어 액세서리는 새롭게 디자인해냈다. 시대를 거스른 두 의상 스타일의 조화는 이질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독창적으로 느껴진다. 그가 금속, 3D 프린터, 종이 등을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었던 건, 그가 사실 사진작가가 되기 전에는 건축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젊은 시절의 경험은 이후 작품 활동을 펼쳐나가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건축가가 만든 옷, 그래픽 디자이너의 손 아래 이뤄지는 촬영, 이런 능력을 지닌 이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 HUFTON+CROW

스튜디오는 세계를 넘나들며 건축 사진을 감동적으로, 또 인상적으로 담아왔다. 두 사진가가 한 스튜디오 안에서 함께 작업하기 때문에 다른 스튜디오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서로를 보완하며 혹은 서로 경쟁하며 작업하기 때문인데, 한 프로젝트를 동시에 촬영하거나 각기 다른 프로젝트를 촬영하며 서로 비평하거나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 완성도를 높인다. 
 

HUFTON+CROW



  Ⓒ HUFTON+CROW

건축 사진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Hufton+Crow의 인스타그램을 방문해볼 것. 그들의 사진은 깊이 있게 일관성을 유지한다. 동시에 다채롭기까지 하다. 사진을 찍어본 이들이라면 이런 퀄리티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분명 짐작할 수 있을 거다. Hufton+Crow는 런던에 기반을 둔 건축 사진 스튜디오로, 두 사진가 Nick Hufton과 Allan Crow가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영국 체셔주 메이클즈필드에서 함께 나고 자랐다. 아날로그 사진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누비던 이들이지만, 머지 않아 디지털 영역에서도 자신들의 실력을 뽐내고 있다. 


  Ⓒ HUFTON+CROW


  Ⓒ HUFTON+CROW

이를 통해 디테일에 대한 열정, 창의적인 접근 방식, 신뢰할 수 있는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스튜디오는 단지 그들의 눈에 전문적이고 멋져 보이는 사진을 찍는 데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고객을 둔 예술가들’이다. 사진가들은 고객의 목표에 먼저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 그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강력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한 번 이들을 찾은 건축가들은 다시 이들과 일하고 싶어한다. 그들의 Linkedin에 남겨진 리뷰를 보라. “창의적이고, 함께 일하기 좋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건축물을 표현하길 원하는지 잘 이해하죠.” 이들이 유명한 건축 스튜디오와의 협업을 계속해 이어나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Zaha Hadid Architects 역시 이들의 고객 중 하나다. 2013년 말, 그들은 하디드의 Heydar Aliyev Center를 촬영하기 위해 아제르바이잔으로 향했고, 

2014년 그들은 Arcaid Images Architectural Photography Awards의 수상자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상 몇 개로 만족하지 않는다. 두 작가가 나란히 카메라를 들쳐 매고 세계 곳곳으로 향하는 이유다. 지난 몇 해 동안 그들이 방문한 지역만 해도 수십 개에 달한다. 덴마크의 Køge와 Copenhagen, 영국의 London, Isle of White, Leeds, 싱가폴, 미국의 Miami, 이스라엘의 Eilat, 중국의 Beijing, 아랍 에미리트의 Qatar와 Doha 등. 


JOCELYN LEE STUDIO



  Ⓒ JOCELYN LEE STUDIO

Jocelyn Lee가 최근 노년의 여성들의 투명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을 계속해 발표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 이유다. 메를리 퐁티의 사유에 따르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수많은 경험을 축적했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반복되는 감각은 몸을 익숙하게 만들고, 그 어떤 것에도 쉽게 충격 받지 않게 된다. 사회의 여러 감각과 충격을 받아들이며 체득하고, 체화해 온 여성의 몸, Jocelyn Lee의 시선 아래서 여성의 몸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이들은 온 우주의 살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그들의 피부와 맞대고 있다. 주제에 대한 작가의 관능적인 시선은 나이 든 여성을 보이지 않는듯 여기거나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던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런 일련의 작품들은 지난 가을 Minor Matters Book를 통해 노년의 벌거벗은 여성들을 다룬 책 [Sovereign]에 실리기도 했다.


  Ⓒ JOCELYN LEE STUDIO


  Ⓒ JOCELYN LEE STUDIO

“저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제가 사진을 찍는 이유죠. 그건 바로 살아있다는 뜻이고,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알려주죠. 제가 계약에 따라 사진을 찍든, 개인적인 작업을 하든, 하는 생각은 다르지 않아요.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며, 나이들고, 약해지고, 죽어가는 이 모든 내러티브에 큰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Jocelyn Lee는 3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초상을 찍어온 사진가다. 그가 5년 전 Maine 주로 옮겨왔을 때부터 그 풍경은 초상과 함께 그의 작품에서 더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중형 필름 카메라로 야외에서 촬영된 그의 작품은, 동물, 식물, 인간 모두가 세계와 장소를 촉각적이고 감각적인 본질로서 묘사한다. 

2018년, Jocelyn은 Center for Maine Contemporary Art에서 40회가 넘는 사진전을 열었다. 작품들은 정물, 초상, 풍경을 넘어 서로 결합하고 분리되며 Jocelyn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 안에서는 신체가 하나의 풍경이 되고, 정물이 하나의 초상이 되며, 풍경이 몸이 된다. 해당 작품 시리즈는 작품의 관람객의 몸이 작품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어떤 이들은 그의 작품을 들어 ‘살의 세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껍질, 몸, 살갗은 지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그의 관점은 메를리 퐁티(Maurice Merleau Ponty)로부터 비롯되었다. 메를리 퐁티는 인간의 정신과 의식을 사유의 중심으로 삼지 않고, 몸의 감각을 중요하게 여겼던 철학자다. 그는 철학이 우리 앞의 현상을 지각할 때 시작된다고 믿었다. 어떤 사람들은 몸을 정신 그 아래에 있는 것으로 여기곤 한다. 정신이 주체고, 몸은 주체에 따라 움직이는 대상이 된다. 동시에 몸은 자유롭고픈 정신을 속박하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속박이 없다면 자유도 없다. 주체는 객체를 지배할 수 없다. 객체가 주체를 이끈다. 이것이 Jocelyn Lee가 사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몸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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